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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이야기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 )에 관하여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 1797-1879)


국민학교를 경영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프란츠 페터는 어려서 부터 음악적 재능을 나타내어 8세때 부터 아버지와 근처의 교회 오르가니스트로부터 바이올린,피아노,성악,오르간을 배우고 1808년 왕실 예배당의 소년 가수 시험에 합격하여 국립신학교라는 기숙사에 수용되어 피러리스트 수도회의 규정에 따르는 훈련 및 일반 교육과 일류 교사로부터의 음악교육을 받았다. 특히 살리에르가 그의 음악적 재능을 높이 평가하여 작곡 및 그 밖의 것을 가르쳤다.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 1797-1879)

그는 그곳에서 여러가지로 재능을 키울 기회도 많았을 뿐 아니라 평생 변함없는 우정을 나눈 요제프 슈파운을 사귀게도 되었다.1813년에 변성기가 와서 콘빅트를 떠나게 되었으나 재학중에 그는 이미 상당한 작품을 완성하였다.

그중의 어떤것은 습작의 테두리를 벗어난 것이었다.1년간의 교원 양성 교육을 마치고 아버지 학교의 조교수로 일하면서 대작에 착수하여 재 1교향곡 D장조를 완성하였고 이어서 오페라 <악마의 별장>도 완성하였다.1814년6월에는 F장조의 미사곡을 완성하였고 10월엔,리히텐타르의 14개의 구난성인 교회"에서 초연하여 호평을 받아 프란츠 페터의 이름이 빈 시민 사이에서 널리 알려 졌다. 같은해 10월에 작곡한 <실을 잣는 그레트 헨>은 그의 가곡의 장래의 방향을 나타내는 작품이다.1815년 18세 때는 생애 중에서도 드문 다작의 해로서 <들장미><마왕><끊임없는 사랑>등의 명작을 포함하는 약 145개의 가곡 G장조의 미사곡 ,제2교향곡B장조,오페라는 미완성의 것을 포함하여 4곡, 그밖의 것이 작곡 되었다.

1816년12월,청년 쇼버의 어머니가 빈으로 나와 넓은 집에서 살게 되어 그동안 그의 집에 머물며 교직 생활을 그만두고 계속 그 집안의 신세를 지면서 작곡에만 저념하였다.

1816년의 작곡은 제 4교향곡은 c단조<비극적>가곡<마부 크노스스에게><만령절의 연도><자장가><유량하는 사람>괴테의 "빌 헬름 마이스터"에서의 <수금연주자의 노래>등이 있다. 그 후 쇼버의 소개로 교양이 있는 배우이자 성악가인 포글과 사귀게되어 그가 출입하는 상류,중류 가정의 사교 집회에서 슈베르트가 반주하는 자작의 가곡이 포글의 노래로 소개되면서 점차 명성이 높아졌다. 이 때에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등을 듣고서 배우는 바가 있었다. 가곡 작곡의 기술은 더욱 향상하고 <죽음과 소녀><음악에><가니메드><타루타르스의 무리>등이 작곡되어 a단조를 비롯한ㅇ 4곡의 피아노 소나타도 완성하였다.1818년5월1일 슈베르트이 서곡 하나한가 유료 공개 연주 외의 프로그램에 실려 기악 작곡가로서의 명성도 떨치게 되었다.

스토리 탤러 서병국 선생님과 함께하는 슈베르트에 관한 이야기

1823년은 수확이 많은 해였다.<반역자들>,오페라<피에라브라스>로만스그<로자문데>가 작곡 되었다. 가곡으로서는 <물위에서 노래한다><그대는 나의 안식처><아름다운 물방앗간 소녀>연작 20곡이 있다.피아노곡으로서는 <34개의 감성적 왈츠><악흥의 때><12개의 독일 무곡>등이 있다.

게다가 이 해부터는 슈베르트를 둘러싸고 그의 새 작품을 듣는 모임이 여기저기의 가정에서 개최되게 되었다. 이것을     슈베르티아데아라 하였다. 그 밖에 몇 개의 피아노연탄곡과 독주곡도 작곡 되었다.1825년 2개의 피아노 소나타A장조 ,OP42와 D장조,OP53은 모두 호평을 받았다.1926년 피아노의 명작 G장조 소나타 ,OP78이 작곡 되었다, 이것은 보통 판타지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베토벤을 신처럼 존경했는데 베토벤은 그의 가곡과 피아노곡에 흥미를 보였다고 한다. 슈베르트는 선배인 고전주의 시대의 작곡가들과 마찬가지로 악곡의 모든 장르에 손을 대고 있다. 이 점은 로맨티시즘 시대의 작곡가가 일정한 악곡에 한하여 작곡한 것과는 다르다.그러나 그는 작곡가로서 예술적 수준에 있어서나 역사적 의의에 있어서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 하고 있다. 다만 그 자신 특히 만년에는 가곡 작곡을 예외적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은 듯하다.

슈베르트가 <마왕>을 작곡한 집

 소년,청년 시대의 가곡 곡에는 레시터티브풍의 데클라마티온이 많고 그것도 아이로소와 원활하게 맺어져 있지 않다는 점 등,약점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아직도 빈 시민 사이에는 이탈리아 음악을 애호하는 경향이 뿌리깊게 남아 있다는 것과, 독일 리트의 형식이나 기법이 아직 확립되지 않은, 말하자면 시행착오의 시대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시행의 상태에서 슈베르트를 구해낸 것은 고전주의 시대가 끝나갈 무렵의 독일 민간 음악의 예술 음악으로의 승화와 독일 시단의 화려한 향상 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 있어서 가곡 작곡가로서의 그는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탈리아풍의 칸타타에 근원을 갖는 통작 형식과 민요에서 기원하는 복절 형식의 융합은 <보리수>등의 명작에서 볼 수 있는 형식이며,변화된 복절 형식이라 불러야 할 것이겠지만 이것을 손에 넣음으로써 그는 독일 리트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에다가 무겁지 않으면서 의미가 깊은 반주,가사의 감정적 내용에 대응하는 조바꿈 등이 슈만,브람스,말러의 예술의 출발점이 된 것이다. 그에게는 독창가곡 이외에도 다수의 중창 가곡이 있다.

이들은 시대의 유행에 따랐다는 요소가 강하지만 그중 많은 것은 독창 가곡과 경향을 같이 하고 있다.교향곡작곡가로서 그는 하이든,모짜르트의 양식에서 출발하여 베토벤의 모범을 따라서 작곡을 해나갔지만 그가 도달한 곳은 베토벤의 구축성,기념비성이 아니라 말러나 브루크너의 유동성,서정성이었다.

따라서 그에게서는 주제조작의 교묘함을 기할 수는 없다.그의 8중주,5중주는 교향곡의 준비로 볼 수 있는것이어서 순수한 실내악으로 다룰 수는 없다. 그의 명작인 2개의 현악 4중주곡,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1828년의 G장조의 현악 4중주 곡,피아노3중주B장조 피아노 5중주 <송어>는 각가 그 나름대로의 개성을 갖고 있다.d단조 <죽음과 소녀>의 제 1막장은 그로서는 드물게도 교묘한 주제 조작이 행하여져 있으며 a단조의 현악 4중주 미뉴에트와 G장조의 제 1악장은 일품이다. 한마디로 그의 실내악의 특징을 표현 한다면 이처럼 풍토를 잘 나타낸 음악은 달리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일 것이다.피아노 소나타는 그가 신처럼 존경한 베토벤의 만년의 스타일에 슈만 비슷한 젊음,게다가 그에게 독특한 서정성의 포함이라 생각되지만 원래 베토벤과 같은 구축성이 강한 단계를 거치고난 자유로움이 아니기 때문에 이완된 부분이 있는것을 부정 할 수 없다.

<방랑자 환상곡>의 어떤 부분은 완전히 슈만적이며 또 연주 기교면에서는 리스트에 가깝다.<악흥의 때><즉흥곡>은 멘델스존이나 슈만의 소곡 연작의 지접적인 선구이며 19세기 후반에 무수히 만들어진 서정소곡 또는 살롱 피스의 출발점이 되었다.피아노 연탄곡 합창곡도 마찬가지로 당시의 유행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대형의 교회 음악은 그의 머리에서 흘러 나오는 선율이 성악적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의 오케스트라의 표현력을 중시한 교회 음악과 상당히 거리가 먼 ,그에게 독특한 스타일을 갖고 있다. 그의 그때 미사곡이 모두 크레오의 전례문 일부를 빠뜨리고 있다는 사실은 연구자들로 하여금 갖가지 추측을 낳게 하고 있으며 그가 교회를 부정하였다는 설도 있었으나 이것은 지나친 생각이었을 것이다.

반주하는 슈베르트

그는 카톨릭적 전통이 뿌리깊고 게다가 그런 분위기가 풍부한 빈에서 자랐으므로 교회적 종교심이 몸에 배어 있었다고 생각된다.그의 동생 페르디난도가 사제가 된 것도 이와 관련하여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는 평생 오페라 작곡열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하나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것은 그그가 대본이 좋고 나쁜것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저돌적으로 작곡 하였기 때문이다.아름다운 음악이 아깝게도 알맞은 장소에 놓여지지 못하고 클라이맥스로서의 진전 과정이 없기 때문에 죽어 버리고만 것이다.오페라라는 점에서는는 슈베르트도 그의 재능을 낭비한 셈이다.

이와 같이 생각해 나간다면 슈베르트를 로맨티시즘시대의 작곡가로 규정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다만 그는 자기 음악에 대한 태도가 하이든이나 모짜르트의 그것과 어떻게 다를지를 자각하지 못하였다. 이 점에 있어서는 베토벤이나 베버나 슈만과 달리 모짜르트 등에 게 가까운 점이 있다.  또 그의 음악적 재능이 풍부하다는 점에서도 모짜르트와 비슷한 점이 있다.슈베르트의 작곡이 빠른 점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그가 작곡을 빨리하고 쉽게 한다는 것은 모짜르트의 그것과는 다소 다르다. 슈베르트의 경우에는 일과성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이것이 슈베르트의 음악이 때로는 어딘지 모르게 안정성이 없는 듯한 느낌을 주는 원인이 될 것이다.그렇다 하더라도 그의 음악의 아름다움은 다른 작곡가에게서는 도저히 찾아 볼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영상에서도 소개한 바 있듯이 슈베르트는 작곡 할 때 기타를 사용하여 많은 작곡을 하였기 때문에 특별히 더 많은 관심이 가는 작곡가이다.